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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탄펄싱 게시판

제목
티베탄펄싱 방광 후기...
작성자
수연
작성일
2016.12.09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145
내용

방광은 수치심과 분노의 장기라고 한다. 


유아가 소변을 가리기 시작하는 나이, 그것을 훈육하기 위해 오줌을 싸면 부모에게 혼나기도 하고, 우리나라 전통에는 키를 씌워 소금을 얻어오라고 옆집에 보내기도 했다. 옆집에서는 소금을 받기보다는 물벼락을 맞으며 수치심을 느낀다. 


그리고, 소변이 차올라, 방광이 꽉 차게 되면, 우리는 다급해진다. 마침내 화장실을 찾아 소변을 보면, 그때 소변은 굉음을 내며 폭발, 쏴~하고 쏜살같이 쏟아진다. 마치 차곡차곡 쌓였던 분노가, '이제 더는 못참아'하며 폭발하는 것 처럼. 


그래서, 방광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요의가 느껴질 때 참지 말고, 바로바로 소변을 보며, 이완해야 한다고 한다. 

소변을 참았다가 누었을 때는, '시원해'라는 쾌감이 있는데, 이것은 본질적으로 성적인 쾌감과 동일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쾌감을 느끼기 위해서 소변을 참는 게 무의식적인 습관이 되기도 한다고. 그러나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나는 설명을 들으며, 분노의 표출은 건강한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분노를 표출하지 못하고, 안으로 안으로 담아두면서 마음의 병, 몸의 병을 만드는 친구들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그리고, 나의 방광은 건강한 것 같았다. 나는 아무리 윗사람이라도 부당한 일에는 폭발하므로, 그런 이력때문에 뒷담화는 있을지언정, 윗사람들이 나한테 함부로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 방광이 날 때부터 건강한 것은 아니었다. 설명을 들으며, 소변을 참 오래도록 가리지 못했던 나의 유년기를 떠올렸다. 그래서, 학동기 이전 유아기때는, 부모님이 새벽에 한번씩 일어나셔서 나를 소변을 보게 하기를 한참이었다. 그 이후 학교에 가서도 나는가끔씩 '오줌을 쌌다.'  혼내는 것도 한두번이지, 어느 순간 부모님은 체념하고, 또 그러려니 한적이 있다. 답답했는지, 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님은 비뇨기과에 나를 데려갔다. 의사는 나에게 '얀요증'이라는 진단을 주었고, 약을 처방해주었다. 그 나이에 소변을 못가리는 것은 내 자아에게 큰 수치였다. 그런 나에게 의사가 명백한 진단을 주고, 약을 처방해주니, 그때 모종의 자신감이 생겨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뭘 잘못해서 그런게 아니라, 내 몸에 정말 병이 있는 거라는, 즉, 내탓이 아니라 몸의 병의 탓이라고 돌리게 되었고, 이런 사고의 전환이 나에게 면죄부이자 자신감이 되어주었다. 그때 약을 몇달 먹고는 약을 끊은 이후에도 오줌을 싸는 일은 없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진단명은 '야뇨증'이었고, 약은 Desmopressin이라 불리는 항이뇨호르몬이었던 것 같다. 오줌싸개병을 그럴싸하게 달리 불러주었던 것이 나를 치료해주었던 것이다.  


우리의 수치심은 부모와도 연결될 수 있다는 사라사이님의 설명과, 어머니와 관련된 자미님의 얘기를 들으며, 그리고, 엄마가 나를 임신했을 때 태교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영희님의 혜안 덕분에 나는 이제 왜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소변을 가리지 못했었는지 알게되었다. 


우리 엄마는 22살, 아직 감성적으로 성숙하지 않는 나이에 7살 많은 남자한테 시집을 왔고, 우리 아빠는 마초의 전형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서로가 서로를 집착적으로 사랑했고, 그래서 자식을 배우자보다는 덜 사랑한다고 공공연히 우리에게 고백할 정도였다. 아빠는 엄마를 지극히 사랑했지만, 마초적인 폭력과 권력 성향으로, 둘이 부부싸움을 하면, 꼭 엄마가 져야했고, 엄마가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어야했다고 한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어 엄마에게는 큰 수치심을 느꼈고, 23세에 낳은 첫 아이인 나를 임신했던 중에, 결혼을 후회하고, 감옥처럼 답답하게 느꼈다고, 몇 달 전에 나에게 얘기해준 적이 있다. 


유아기의 나는 고집이 셋지만, 남앞에 서기를 두려워해서 재롱잔치 때 친구들처럼 춤을 추지 않고, 울었던 적이 있다. 집안에 첫 아이라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엄마는 일을 했고, 나에게 살갑지도 않았기 때문에(왜냐면, 아빠의 사랑에 대한 경쟁상대에게 더 가까워서), 나는 늘 외로웠고, 별로 사는게 즐겁지 않았다. 네 살때는, 내가 독점해서 가지고 놀던 퍼즐을 선생님이 뺏어서 다른 아이에게 주었을 때, 항의했고, 유아원을 뛰쳐나가, 하늘을 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나를 왜 태어나게 했냐'고 원망했었다. 좀 더 커서 유치원에 가서는 친구를 사귀는 게, 다가가는게 정말 어렵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 조그만게 뭘 안다고,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인생도 즐기지 못하고, 아빠를 '모시며' 시댁에 매여서 사는)고 늘 다짐을 했었다. 아는 사람 한명 없는 캠프에 가서는(아빠가 보내서), 다른 애들이 집에 전화를 한통씩 다 하는데, 나는 별로 그럴 생각이 안들었다. 집에 오니 엄마가 어떻게 전화한통 없냐고 서운해했지만, 나는 그냥 별로 보고싶다는 생각이 안들어서 그랬다고 덤덤히 얘기했다. 물론 캠프는 재미없었다. 나는 고집이 세고, 내성적이며, 약간 우울한 기운이 감도는 그런 아이였다. 


이런 기억들을 늘어놓다보니, 그 모든 것이 연결되었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나의 방광을 포함한 내가 받은 트라우마가 정말 컷고, 태어난 이후에도 그게 잘 해결이 안되었던 것 같다. 이런 문제들을 엄마와 터놓고 얘기하고 풀어나간 건, 중학교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다. 아무튼 그때 이후로 나와 엄마와의 골 깊은 거리는 좁혀졌고, 나의 도둑맞은 유년기를 그때 이후로 넘치도록 보상받고는 있다. 사실, 지금도 간헐적으로 수치심 부끄러움 같은 신체적 감정이 올라올 때가 아직도 있긴 하다. 사람들과 모인 장소에서 더더욱 그렇다. 마지막 기억나는 때는 지난 캠프에서 티타임을 가질 때.. 물론 아무런 외부적 자극도 없었다. 그냥 갑자기 올라온다. 유년기의 상처는 다 해결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았나보다. 이번에 이 아픔, 무의식에 세겨진 이 아픔을 놓아주고 싶다. 


어제 퇴근 길에 이런 생각을 정리하다보니, 그 조그맣던 아이가 너무 불쌍해서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그 원인이자 자신도 피해자였던, 어린나이에 시집와서 온갖 수모와 고생을 했던 엄마가 너무 불쌍해졌다. 그래서 또 한참을 울었다. 어렸을 때 엄마처럼 살지않겠다는 다짐은 내가 태중에 무의식중에 전달받은 엄마의 회한이었던 것 같다. 울음을 그치고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엄마를 꼭 안아주었다, 힘든 인생 사느라 수고했다고 다독여주면서 말이다. 엄마가 얘가 또 왜 청승을 떠냐고 한다. 


엇그제 펌핑을 할 때는, 동작 자체가 힘들지는 않았는데, 가슴이 너무 불편했다. 하트 차크라 아픈것과, 폐 펄싱한다음에 조여지는 느낌이 호전되었었는데, 다시 올라온다. 가슴이 답답해서, 아무것도 안하고 있어도 죽을만큼 힘들었다. 펄싱은 아직은 나에게 늘 인고의 시간이다. 꽃님도 가슴이 많이 아팠다고, 방광과 하트가 정말 많이 연결되어 있어서 그런것 같다고 했다. 나의 방광의 이슈가 하트와 정말 많이 연결되어 있었구나.  


너무 바쁘다, 요즘은. 좌선할 시간도 내기가 힘드니까.

다행히 어제 저녁에는 좀 여유가 있었다. 정좌하고 앉았더니, cool fire가 흉곽과 어깨에 피어난다. 흉곽 전체가 이렇게 시원했던 건 처음이다. 이 기세를 몰아가서 제 7차크라부터 1차크라까지 연결해보고 싶은 욕심이 들었지만, 시간이 너무 없다. 자야될 시간이다, 자자. 나중에. 


오늘 아침, 간만에 몸이 좀 더 개운하고, 쾌청하다고 느껴졌다. 지난 한 달 동안 명현때문에 골골 했는데 말이다. 그리고, 기침이 나기 시작했다. 기침이 날듯, 가슴이 간지럽고, 마른기침이 올라온다. 감기 걸렸냐고 사람들이 물어본다. 감기는 아니고, 나의 아픔과, 성숙함과, 사랑이 묻어 있는 즐거운 기침이라고, 생각으로만 대답해주었다. 


사라사이님, 그리고 시간 함께 해주시는 도반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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