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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도서실

제목
기공수행자가 본 선 - 중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7.19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195
내용

기공수행자가 본 선

                    -중관


신광이 유교와 도교를 공부하고도 그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을 때 인도에서 온 선사가 사원에 왔다는 말을 듣고 그를 방문함으로써 중국의 선이 시작됩니다.

인도에서 온 선사가 바로 달마대사인데 처음에는 신광을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신광은 눈이 펑펑 내리는 밤에 눈이 무릎까지 차 오른 새벽이 되도록 떠나지 않고 그의 가르침을 구했습니다. 달마가 그를 가련하게 여겨 무엇 때문에 그렇게까지 가르침을 얻으려 하는가 물으니 눈물을 흘리며 번뇌하는 중생을 구제할 수 있는 지혜를 베풀어 달라 간청을 했습니다.


달마가 대답하기를 수행의 길은 이겨내기 힘든 곤란과 어려움이 따르니 부단한 결의와 인내를 갖춘 사람이 아니라면 수행을 달성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때 신광이 차고 있던 칼을 빼서 자신의 왼팔을 잘라 달마에게 내밀었습니다.

달마가 그의 열성에 감복하여 제자로 삼았으며 혜가라는 새 법명을 주었습니다.

혜가를 선종의 시조로 모시는 소림에서는 합장 대신에 오른손만을 세워 혜가를 기리는 전통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정진하겠다는 혜가의 각오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선의 실제적 발상은 이처럼 인간이 고통을 견딜 수 있는 그 극점에까지 들어가는 가장 근원적인 탐구에서 비롯됩니다.


  그렇지만 선원에서 결가부좌를 하고 명상에 전념한다해도 진정한 선인지 아닌지를 가리기는 어렵습니다. 선이 그 외형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선 수행은 심리적, 종교적, 철학적, 역사적, 객관적이거나 주관적 내용을 제시하려는 의도로 실천되지는 않습니다.


선을 수행하는 유일하고 확고한 목적은 자기 자신의 구체적 생명 존재를 확인하는데 있습니다. 생명과 나의 존재 사이에는 모순과 불안정성이 내재하고 있습니다. 이 갈등 속에서 서로의 조화와 완성을 추구하는 수행이 선 수행입니다.


 선은 외형의 고상함을 동경하는 假飾을 원치 않습니다. 선의 수행이라는 이름 하에 실천되는 여러 가지가 자아에 內存하는 곤경과 갈등에 맞서 대결하고 그를 해결하려하지 않는다면

참된 선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혜가가 달마에게 진리는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을 때도 달마가 외부로부터는 어떤 해결도 구할 수 없다고 명백하게 답했다 합니다. 선은 지성적 또는 개념의 분석과 같은 말장난으로 접근할 수 없습니다. 직접적이고 단호하게 자아의 급소를 찌르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주객의 분리 속에 떠있는 자아를 향해 도전과 질문을 던지며 자아의 내면에 도달하고 부딪혀 들어갑니다. 생활 속에서 자연스레 떠오르는 公安에 따라 좌선을 하고 자신의 내면적 장애와 불안을 다스려 나갑니다.


 자아의 고통과 불안은 상처를 품고 있는 내면에서 비롯되며 주관적 생각 이상에 도달하지 못하게 됩니다. 주관적 판단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외적으로 받아들인 어떤 감각들을 모순과 모순의 고리 로 연결하여 부정성을 초월하지 못하고 주저앉게 됩니다.

선의 수행에 앞서 대의의 상태로 변하는 것이 예비적 목표일 수 있습니다.

대의는 자아에 본래 내재하는 곤경이 수행 전면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공안, 좌선, 섭심(攝心), 참선이라는 수행 방법들의 원래 목적은 자아를 각성시켜 갈등과 모순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참 자아를 드러내려면 자아의 본질에 있는 이율배반으로 자기 자신을 스스로 소멸시켜 자아의 한계를 현실화시켜야 합니다.

나의 주체가 되는 자아의 현실화는 어떤 대상을 목적으로 삼고 그를 향해 나아가려는 모든 가능 요소들이 소멸되고 부정되어야 합니다. 내면의 자아가 밖으로 뛰쳐나와 어떤 목적을 향해 노력하려는 것을 막아버려 실제로는 내면에 안정적으로 안주시키려는 것입니다.

주관에 집착하면 주관이 향하는 방향과는 반대로 안으로 향해 자아에 원래부터 내재하고 있는 근본적 모순과 자체를 드러내게 됩니다.


 자아의 본질적 모순을 열게 되면 주관도 객관도 사라지게 됩니다. 자아는 제약을 받지 않는 주객을 모두 떠난 상태로 실존의 덩어리 그 자체만으로 남습니다. 자아 의식에 있어 행위와 사실들은 자아를 깨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게 됩니다. 내면적 한계에 도달한다면 자아는 죽어 있는 것과 같이 大死에 이릅니다. 이 대사가 곧 새로운 탄생이며 大悟에 이르는 길입니다.


 공허나 허무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타개와 해소로 내면의 자신을 죽이고 참 진리의 자리로 변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참된 자아는 유아와 무아 그리고 자각 사이에서 실존적 모든 모순을 타파한 깨달음으로 서게 됩니다.


선의 수행에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방법이 調心과 調息입니다. 큰 자아에서 보면 조심이라는 것도 외면에 서 있는 생리와 감각이 결부되어 나타나는 어떤 현상들입니다. 이런 외부적 자극의 변화로 심적 상태를 보다 활력 있게 만들려 하지만 인체의 완전한 내면으로 접근할 수는 없습니다.


 완전한 내면은 어떤 수단으로도 조절할 수 없으며 오직 내면 세계 스스로의 심정 상황에 지배를 받게 됩니다.


 내면의 심정 상황을 안정시키려는 노력의 한 수단으로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해서 정신적 안정을 이루려는 것이 선공(禪功) 조심법입니다.


 조심 수련의 목적은 신체를 휴식 상태로 이완 방송(放鬆)시키며 호흡과 기의 흐름을 조절하여 뇌를 억압하여 흥분 상태로 유도하는 각종 잡념들을 제거시키고 최종적으로는 사고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는 것입니다.


 의식의 집중은 선이나 기공의 수행에 최우선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의식의 집중도 억압의 일종이며 모순의 대립을 통해 그를 소멸시키는 방법의 일종입니다. 좌선을 통해 의식을 집중하는 것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자아를 구속하고 억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마음 속에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일에 의문이 솟고, 알 수 없는 일에 대한 집착을 일으키며, 갖지 못할 것에 대한 욕망을 발하고, 해답을 얻을 수도 없는 의문들을 만들어 연속된 소요를 일으킵니다.

의문의 요소들을 모아 선을 체계화하려는 노력의 일종이 공안이며 이는 선문답과 같은 것입니다. 이런 방법들은 12세기 송의 선사들에 의해 시작됩니다. 그 가운데 조주(趙州)가 가장 유명합니다. 선을 통한 의식과 무의식의 조심공은 기공 수련과도 그 원리의 맥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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